요즘 듣고 있는 Coursera 뇌과학 강좌에 대해 쓰려다가 에세이가 되버린 생물을 사랑하는 AI 박사생의 이야기입니다. 🙃
지금 NLP를 공부하는 AI 박사과정 학생이지만, 제 관심사는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나 무언가를 키우고 있을 정도로 생물에 대한 관심이 참 많았거든요. 키우다가 번데기가 된 나비 애벌레가 나비로 우화했을 때 아파트 창문 밖으로 아빠와 함께 날려주기도 했었고, 네 마리로 키우기 시작한 장수풍뎅이들이 100마리가 넘는 알을 낳아서 애벌레들 사육한다고 꽤나 고생한 적도 있고요. 게 중에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인데, 알부터 키워올린 장수풍뎅이 암컷 한마리는 원래 장수풍뎅이 성체의 수명을 훨씬 넘게 1년 이상 살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적도 있기도 하고요. 또 올챙이들을 키우다가 어항을 꾸며주겠다고 향나무 가지를 넣어 주었다가 (독성으로 인해) 전멸시킨 슬픈 기억동심파괴도 있고요. 가족들과 계곡에 놀러가면 물안경 쓰고 물고기랑 다슬기 잡아서 관찰하는 일이 너무 재밌었고, 시골에 놀러가면 반딧불이, 귀뚜라미, 메뚜기 구경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자연을 사랑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였답니다. 외할머니가 서점을 운영하셨었는데, 생물이나 자연에 관련된 어린이용 도서는 아마 안 읽은 게 없었을 거예요.
생물이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생각해보면요, 누가 들으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키우는 생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며 인생을 배웠던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에세이 글로 작성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키우며 자라나는 모습을 볼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과 활력을 얻었고, 키우는 생명체가 없을 때는 삶에 뭔가 결여된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거의 항상 뭔가를 키웠어요. 물고기, 곤충, 파충류, 포유류, 갑각류, 심지어 식물까지, 종을 가리지 않았네요. 지금은 까칠한 고슴도치 한마리와 빙구미가 아주 넘치는 스팟티드 터틀이라는 종의 소형 민물 거북이 한마리, 그리고 민물새우, 물고기 몇 종류, 다슬기 등이 살고 있는 잡탕(?) 어항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는 제가 생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인지를 한지 별로 오래 되지 않았어요. 제 친동생이 내뱉은 한마디가 계기였어요.
“언니는 왜 맨날 그런걸 봐? 재밌어?”
언제나처럼 생물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던 절 보며 동생이 ‘진짜 언니는 특이해’ 라는 말투로 했던 말입니다. 그 날 보고 있던 영상은 아마 공룡 화석 영상이었나 그랬을거에요. 그 질문이 저에게는 꽤 충격으로 다가왔답니다. 역으로 “응?? 다들 재밌어 하는거 아니야??? 넌 이게 재미가 없어?!” 라고 역질문할 정도로 저는 제 취향(?)이 일반적인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그 계기를 출발점으로,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나름의 확인 작업을 거치며(?) 저의 생물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것을 인정 내지는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가 박사 과정을 시작했던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물에 대한 관심은 뇌과학, 그리고 심리학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는데요, 서로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느껴졌고, 머릿속에 있는 지식 노드들 사이에 연결선들이 생기는 느낌이었어요. 지금도 제 독서와 덕질은 보통 이 분야들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AI 박사 생활은 시작 되었는데, 제 확실한 관심사를 이제서야 알아버리게 된거죠. 그리고 박사 졸업 논문을 써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점점 더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그것들을 그저 취미의 영역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나의 커리어로 발전을 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요. 또 제가 생물에 특별히 관심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AI와 컴퓨터공학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딱히 자각한지 몇년 되지 않았거든요.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컴퓨터공학만 공부한 사람이 생물 관련 field로 넘어가는 루트도 잘 상상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뒤로 하고 생물을 처음부터 공부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고요. 그러다가 나의 스킬과 지식을 활용하면서 생물 관련 field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sub-field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 공학과 생물/뇌과학의 교집합 비슷한 것이 있지 않을까 했던거죠. 그런 연구 주제를 찾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내가 공부해온 것을 버릴 필요도 없고, 오히려 컴퓨터공학을 공부해온 것이 장점으로 활용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나름의 조사와 탐험 끝에, AI 박사 학위 이후의 제 루트는 뇌과학 분야가 가장 적합하겠다는 판단을 요즘 하게 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 참 운도 따라주었다고 느끼는 것이, AI를 뇌과학에 활용하거나, 이 두 필드를 아우르는 융합적인 연구 주제들이 최근 몇년 사이에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아직 뇌과학을 학문적으로는 거의 알고 있지 못하기에 각 잡고 제대로 된 survey를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슬슬 뇌과학 분야에 발가락 정도는 담궈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서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뇌과학이나 생명과학 전공서적을 보면 지름신이 올라오는 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Brain and Behavior, Biological Sequence Analysis, Medical Neurobiology와 같은 textbook들은 집에 잔뜩 쌓여있는데, 아직까지 각 잡고 공부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어요. 눈 앞에 주어진 중요한 일 (졸업 논문) 외의 일을 딴짓이라 생각했을 때, 이 친구들을 읽는 행위가 마치 지금 저에게 주어진 태스크를 소홀히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책임한 행동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고요. 오히려 ‘딴짓’을 병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제가 제 인생을 원하는대로 개척하려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행동인 것 같거든요. “저는 AI를 공부하고 있지만 뇌과학 할거에요!”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실제로 제가 그 분야를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작은 실험들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뇌과학 커뮤니티를 기웃기웃 거리기도 하고, 뇌과학 Course를 듣거나 텍스트북을 펴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답니다.
일단 지금까지의 경험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할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공부가 즐겁거든요. 인생이 항상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심지어 이 글도 처음에는 Coursera에서 듣고 있는 Neurobiology 강좌 리뷰를 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에세이가 되었네요… 글 하나도 예상대로 안 써지는데 인생은 그야말로 망망대해나 마찬가지죠!_!) 주도권은 내가 잡고 방향 설정은 직접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그냥 주어져서”, 또 “그냥 이렇게 흘러와서”, 또는 “해야했기에” 살아온 인생에 가까웠지만 지금부터 슬슬 fine-tuning을 시작해보려 합니다.